집회가 시작되면 모두 묵념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
중간에 한번은 ‘단결 투쟁가’로 결의를 모은다.
사회자가 파업을 선언하면 노동자들은 힘차게 ‘파업가’를 부른다.
율동패가 나와 ‘바위처럼’으로 앙증맞은 율동을 보여준다.
상징의식까지 마치고 나면 ‘철의 노동자’를 부르며 집회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불나비'와 '투쟁의 한길로'를 부르며 뒷풀이를 한다.
- 이 노래는 모두 ‘희망의 노래 꽃다지’ 노래다.
중학교 3학년때 국어선생님은 우리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셨다. 그리곤 노래한곡을 들려주셨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어준 너의 전화카드 한 장을♪’
“성적은 행복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치며 답답함을 호소하던 우리에게 서정적인 그 노래는 위로였고, 따뜻함이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 노래의 가수가 ‘희망의 노래 꽃다지’였음을 알고 난 후 카멜레온 같은 꽃다지의 매력에 빠졌다. 집회에서 강하게 들려오는 노래 역시 꽃다지의 노래였기에.
서정적인 노래와 강한 노래를 여과 없이 소화해내고 있는 꽃다지. 꽃다지가 궁금하다.<편집자 주>
꽃다지 민정연 대표를 만난 건 지하 연습실이었다. 92년에 창단했으니까 20여년 나이만큼 많은 짐과 묵은 때가 묻은 테이프까지 꽃다지의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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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다지는 현재진행형이다. 올 겨울 새로운 음반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신동준 |
꽃다지를 노동자 집회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민대표 역시 첫 말문을 땐 건 ‘수년동안 노동자 집회를 나가지 않은 이유’였다.
“2004년 노동절 때 섭외가 들어왔어요. 그 때 당시 민주노총이 노사정에 들어가 회의를 한다는 결정을 하고 난 다음이었죠. 저희는 반대했어요. 협상은 힘이 있는 자끼리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민주노총은 들러리만 될 뿐이라고 생각했죠”
단호한 어조. 민대표가 노동자 집회에 나오지 않은 이유는 분명했다. 집회에서 구색 맞추기 위한 노래패가 아닌 함께하는 동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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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31일 꽃다지가 금속노조 전국 확대간부 총집결 투쟁대회에서 공연하고 있다. 신동준 |
변화, 꽃다지의 생명
꽃다지는 구호를 외치는 것과 같은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 느린 템포에 집단보다는 개인의 마음과 삶을 위로하는 노래를 지향한다.
“꽃다지는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어요. 모두가 알고 있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면 관객들이 좋아한다는 것쯤은 이제 모두 알아요. 하지만 한 번의 공연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인기있는 노래만 부르면 그들과 소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직 예전 집회분위기가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꽃다지는 관객 호응은 없었지만 계속 새로운 노래를 부른다. 변화하는 대중과 호흡하기위해. “심지어 댄스곡까지 고려할 정도였어요. 물론 지금 맴버들이 아닌 다른 댄스가수들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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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다지 연습실 책장에 손때 묻은 민중가요 노래모음책과 기타, 피아노, 드럼 등 전문 음악책이 꽂혀있다. |
“한 사람 한 사람을 위로하는 노래 부를래요”
꽃다지가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는 이유에도 철학이 있다.
“어느 순간 집회 참가자들의 팔뚝질, 눈빛이 변했더라고요. 자발적인 참가가 아니라는게 느껴졌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구호와 같은 강한 노래는 감동을 주기보다는 강요로 들릴 수 밖에 없겠죠” 민대표는 시대와 대중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변화를 감지한 꽃다지는 집단이 아닌 개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 집회 후 집에 들어가서 들을 수 있는 노래,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되는 노래를 창작하는데 집중했다.
“‘바위처럼’을 7년간 부르지 않았어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 한번 박수 받으려고 ‘바위처럼’만 부르고 무대를 내려오면 타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변화를 위한 인고의 7년을 보낸 후 2008년, 바위처럼을 다시 부르는데 뿌듯하더라고요. 그땐 우리가 준비한 새로운 노래가 함께 있으니까요”
“꽃다지가 변했어!”
그 변화는 쉽지만은 않았다.
‘민들레처럼’을 불렀을 때 사람들은 꽃다지가 변했다고 손가락질 했다. 그리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을 때 인기 좀 있다고 대중음악계로 나갈 거라고 비난했다. 그 비난 속에서도 꽃다지는 3집을 통해 모던 락을 추가하면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어느 한 개인의 노래를 불렀다. 3집 후 ‘동지’들은 “이 노래 듣지 말라”며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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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30일 꽃다지가 정기 거리공연을 앞두고 공연연습을 하고 있다. 신동준 |
꽃다지는 현재진행형
하지만 꽃다지는 흔들림이 없었다. 민대표는 “지금은 집단적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결의하기 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를 설득하고 위로해서 나아가야 할 때”라며 그들에게 힘이 되는 노래를 부르는게 꽃다지의 ‘변화’라고 설명한다. “처량맞은 노래 한 구절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어요!”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긴 시간 싸울 힘이 필요해요. 그 긴 시간동안 꽃다지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무기가 되어주고 싶다”는 민대표.
실제 민대표는 동희오토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투쟁에서 노래하는 1인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덧붙힌다. “정규직이 지금 나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건 잘못하고 있는거에요. 나름이 아니라 내일처럼 해야죠”라며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꽃다지처럼”
‘꽃다지’는 꽃 이름이다. 한 송이로는 볼품없지만 함께 있을 때 예쁜 꽃마을을 이루는 꽃.
“노동자 한명의 힘이 아닌 비정규직, 정규직할 거 없이 함께 뭉친 노동자들의 헌신성과 닮았어요”
꽃다지는 90년대 초반 억눌렸던 노동자들의, 민중들의 분노를 노래하는 동지였다면, 지금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노래하는 동지로 남아있다. 그래서 꽃다지의 노래에는 여전히 시대가 그려지고, 삶이 그려진다.
자 이제 우리 자유를 말해봐요
저 침묵을 깨고 (아직)할 일이 많잖아요
새로운 세상 아직 기다리는
어리고 맑은 눈동자를 언제나 기억해요
자 힘을 내 다시 또 가는 거야 고개를 들어요 손 잡아요
비바람 불어 우릴 힘들게 해도 나 여기 있어 네 손 잡아줄게
- 2008년 발표된 꽃다지 노래 ‘한번 더’ 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