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세상연구소 웹진에 2011년 3월 5일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1년여전 아랍혁명과 관련한 노래이야기입니다. 1년여가 지났으나 아랍민중은 여전히 피흘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번역해줘' 한마디에 아랍트위터 생중계를 두달여간 해주었던 사무엘, 벗이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덩달아 함께 했던 테리, 유스캐노스, 무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노래로 보는 세상
두 번째 레터 : 정윤경의 ‘시대’ 이야기
민정연(꽃다지 대표)
1월 말부터 지금까지 제 최대 관심사는 아랍혁명이었습니다. 1월부터 꽃다지 새 음반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상황에서 음반 작업이 뒤로 밀리고 아랍혁명이 최대 관심사였다니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1월 25일, 한 트위터친구가 이집트민중들이 광장으로 나오고 있다며 영문기사를 링크 걸어 주길래 "번역해주세요" 라고 부탁할 때만 해도 이렇게 몇날 며칠 잠못 들지는 몰랐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친절로 시작했던 그 친구는 이집트의 인권운동가들과 기자들이 트위터로 시시각각 올리는 맨션들을 거의 빠짐없이 번역해서 트위터로 중계해 주었습니다. 맨션이 이어질수록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저뿐만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현지에서 트위터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이미지들이 넘쳐났습니다. 중계하는 친구가 너무 잔혹하다 싶은 것을 걸러서 중계함에도 그랬습니다. 타히르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공포가 온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최소한 총을 쏘지는 않았던 87년 그 거리에서조차 최루탄이 터지자마자 도망가기 바빴던 저였기에 더욱 예민한 건 아니었습니다. 누구라도 그 중계를 하루만 지켜보면 느낄 공포의 현장이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이집트 민중들은 흔들리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광장을 지켜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래의 사진이었습니다. 시위 와중에도 하루 다섯 번씩 예배를 보는 무슬림 시위대를 위해 기독교도 시위대가 손에 손잡고 삥 둘러서서 보호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제가 알고 있던 이집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87년 거리에서, 2008년 광장에서 만났던 우리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무슬림 시위자들이 기도를 올리는 동안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손에 손잡고 삥 둘러서 있는 이집트 콥트 기독교도 시위자들 >
그리고 1월 30일에 올라온 한 여성의 음성파일은 많은 트위터들을 울분에 떨게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카이로에 있는 모나 세이프에요. 저는 인터넷을 통한 우리의 마지막 소통통로가 끊어졌고, 휴대전화 역시 끊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만일 내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여러분이 듣지 못하실 경우에 모두들 걱정하시지 말라고 알려드리고 싶어요. 그들은 이전에도 이랬지요.
유일한 차이라면, 지난번에 그들이 그렇게 했을 때는 제가 완전히 넋이 나갔고 너무나 겁을 먹었다는 거예요. 그들이 우리에게 총을 쏘아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전 전혀 겁이 나지 않아요. (머뭇) 밝은 목소리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흥분해 있고, 우리는 행복합니다. 우리는 내일 타흐리르광장으로 나갈 거예요. 우리는 정말 많이 모일거고 행진하고 항의하고, 무바라크를 몰아낼 거예요. (한숨) 저희와 함께 해주세요. 안녕.”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지만 애써 억누른 두려움은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2월 4일 퇴진의 날, 2월 6일 순교자의 날, 2월 8일 이집트 사랑의 날, 2월 11일 작별의 금요일까지 이쯤에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깨고 그들은 부통령이 무바라크의 퇴진을 알리는 성명을 발표한 2월 12일까지 계속 피를 흘리며 광장을 지켜냈습니다. 무바라크의 항복 선언을 받아내며 이집트혁명의 한 매듭이 지어지는 그 순간은 1987년 6.29선언을 듣던 순간의 가슴 뻐근한 벅찬 감동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그들이 싸우는 그 현장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지지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내가 광장에 섰을 때 의지가 되었던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길가에서 '너희를 지지한다.'라고 은근한 눈빛을 보내주던 행인들, 골목으로 도망쳤을 때 빠끔히 가게문 열고 들어오라던 상인들, 한국의 시위를 지지한다는 외신 한 줄……. 그 작은 하나하나가 공포에 떨며 내일은 나가지 말아야지 하던 발걸음을 다시 또 광장으로 향하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던 기억……. 이집트인들도 나와 같지 않을까? 트위터를 통해서라도 당신들의 소식을 지켜보고 지지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80년대 역사의 한가운데서 한사코 도망치고자 했던 저로서는 그때 그 광장에 내가 좀 더 많이 함께 했더라면 다르게 바꿀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채의식까지 겹쳐졌습니다. 비록 광장에서 함께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라도 응원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혁명을 트위터중계로 지켜보며 한국사와 맞물리는 기시감, 데자뷰는 참 몸서리쳐지게 힘들더군요. 인민의 피로 얻은 자유가 결국 군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상황에서는 ‘체념’이라는 단어가 언뜻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혁명의 과정이 우리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더라도 우리와는 다른 역사의 물꼬를 틀 거라고 믿습니다.
<기도를 하며 물대포를 막아선 시위대의 모습>
현재 튀니지의 쟈스민혁명과 이집트혁명이 촉매제가 되어 아랍전역에서 민중들에 의한 민중혁명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특히 리비아와 관련한 소식은 언론을 통해서 여러분도 자주 접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투쟁을 지지했던 전 세계 인민들로부터 얻었던 용기를 기억하며, 아랍이라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민중의 역사로 함께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트위터에서 이집트혁명 중계를 보다 몇몇 친구들이 시위대가 이집트국가만을 부른다며 한국의 민중가요를 불러 용기를 주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가사 번안할 분을 물색하다 이집트혁명이 끝나버려 성사되지 못했지만, 그때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한참 고민하다 결정한 노래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시대’라는 노래입니다.
‘시대’는 99년에 발표한 정윤경의 1집 첫곡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노래가 ‘평화’를 노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몇몇 가사 때문에 생긴 오해인 듯합니다. 1996년 12월 26일 10시 43분 03초, 노동관계법의 기습통과를 보며 만든 노래입니다. ‘민주정부’, ‘문민정부’라고 하는데 진정으로 그러한가? 과연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있는가? 권력과 자본의 폭력 앞에 민중들의 삶은 군사정권시대와 달라질 것이 없지 않은가? 자본주의의 모순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 삶은 그대로이지 않는가?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정윤경은 전문노련노래패 ‘들무새’의 노래강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자노래패도 자신의 노래를 갖고 공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들무새’가 부를 신곡을 만들던 시기에 노동관계법 기습통과를 보며 김영삼 정권의 본질을 꿰뚫는 노래를 반어법적으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는 1997년 노동자노래패 ‘들무새’에 의해 처음 불렸습니다. 처음 노래제목도 ‘문민시대’였으나 1999년에 정윤경 1집음반에 넣으며 ‘시대’로 바꿨습니다.
노랫말은 눈치 채셨겠지만 브레히트의 시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 첫 번째 전쟁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 이미 여러 차례 전쟁이 일어났었다. / 지난번 전쟁이 끝났을 때 / 승전국과 패전국이 있었다. / 패전국에서 하층서민들은 / 굶주렸다. 승전국에서도 역시 / 하층서민들은 굶주렸다.
70여 년 전 브레히트가 노래했던 민중의 삶이 20세기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놀랍지 않습니까?
정윤경은 이 노래를 만들며 기존의 민중가요와 다르게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4박자의 힘차고 거친 투쟁가와는 다른 질감으로 노동자 민중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던 거지요.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3박자로 다른 민중가요에 비해 리듬감이 돋보입니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들을 때의 시원시원하면서도 경쾌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악보 상으로는 4분 음표 중심으로 아주 딱딱하고 단순해 보이는데 실제 노래를 부르다보면 저절로 몸을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며 박자를 맞추게 될 겁니다.
이 노래는 단어와 단어에 초점을 맞추어 말하듯 또박또박 발음하며 노래하셔야 합니다. 잠깐 방심하고 열심히 노래하다보면 자칫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다’라는 문장을 만드실 수도 있습니다. 군홧발, 폭력, 생기발랄, 무한경쟁, 전사, 승전국, 패전국 등의 단어마다 또박또박 힘을 주어 불러야 노랫말이 가진 의미를 살릴 수 있습니다. 마치 옆 사람에게 말한다는 느낌으로 노래해보세요. 3박자 곡이므로 첫박에 강박을 넣고 단어마다 정확하게 강조하여 리듬감을 살려 부르면 노래의 맛을 잘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자 이제 노래를 들으며 함께 불러보실까요?
시대
정윤경 작사
정윤경 작곡
정윤경 노래
1년여전 아랍혁명과 관련한 노래이야기입니다. 1년여가 지났으나 아랍민중은 여전히 피흘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번역해줘' 한마디에 아랍트위터 생중계를 두달여간 해주었던 사무엘, 벗이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덩달아 함께 했던 테리, 유스캐노스, 무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노래로 보는 세상
두 번째 레터 : 정윤경의 ‘시대’ 이야기
민정연(꽃다지 대표)
1월 말부터 지금까지 제 최대 관심사는 아랍혁명이었습니다. 1월부터 꽃다지 새 음반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상황에서 음반 작업이 뒤로 밀리고 아랍혁명이 최대 관심사였다니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1월 25일, 한 트위터친구가 이집트민중들이 광장으로 나오고 있다며 영문기사를 링크 걸어 주길래 "번역해주세요" 라고 부탁할 때만 해도 이렇게 몇날 며칠 잠못 들지는 몰랐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친절로 시작했던 그 친구는 이집트의 인권운동가들과 기자들이 트위터로 시시각각 올리는 맨션들을 거의 빠짐없이 번역해서 트위터로 중계해 주었습니다. 맨션이 이어질수록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저뿐만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현지에서 트위터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이미지들이 넘쳐났습니다. 중계하는 친구가 너무 잔혹하다 싶은 것을 걸러서 중계함에도 그랬습니다. 타히르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공포가 온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최소한 총을 쏘지는 않았던 87년 그 거리에서조차 최루탄이 터지자마자 도망가기 바빴던 저였기에 더욱 예민한 건 아니었습니다. 누구라도 그 중계를 하루만 지켜보면 느낄 공포의 현장이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이집트 민중들은 흔들리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광장을 지켜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래의 사진이었습니다. 시위 와중에도 하루 다섯 번씩 예배를 보는 무슬림 시위대를 위해 기독교도 시위대가 손에 손잡고 삥 둘러서서 보호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제가 알고 있던 이집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87년 거리에서, 2008년 광장에서 만났던 우리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무슬림 시위자들이 기도를 올리는 동안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손에 손잡고 삥 둘러서 있는 이집트 콥트 기독교도 시위자들 >
그리고 1월 30일에 올라온 한 여성의 음성파일은 많은 트위터들을 울분에 떨게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카이로에 있는 모나 세이프에요. 저는 인터넷을 통한 우리의 마지막 소통통로가 끊어졌고, 휴대전화 역시 끊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만일 내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여러분이 듣지 못하실 경우에 모두들 걱정하시지 말라고 알려드리고 싶어요. 그들은 이전에도 이랬지요.
유일한 차이라면, 지난번에 그들이 그렇게 했을 때는 제가 완전히 넋이 나갔고 너무나 겁을 먹었다는 거예요. 그들이 우리에게 총을 쏘아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전 전혀 겁이 나지 않아요. (머뭇) 밝은 목소리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흥분해 있고, 우리는 행복합니다. 우리는 내일 타흐리르광장으로 나갈 거예요. 우리는 정말 많이 모일거고 행진하고 항의하고, 무바라크를 몰아낼 거예요. (한숨) 저희와 함께 해주세요. 안녕.”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지만 애써 억누른 두려움은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2월 4일 퇴진의 날, 2월 6일 순교자의 날, 2월 8일 이집트 사랑의 날, 2월 11일 작별의 금요일까지 이쯤에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깨고 그들은 부통령이 무바라크의 퇴진을 알리는 성명을 발표한 2월 12일까지 계속 피를 흘리며 광장을 지켜냈습니다. 무바라크의 항복 선언을 받아내며 이집트혁명의 한 매듭이 지어지는 그 순간은 1987년 6.29선언을 듣던 순간의 가슴 뻐근한 벅찬 감동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그들이 싸우는 그 현장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지지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내가 광장에 섰을 때 의지가 되었던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길가에서 '너희를 지지한다.'라고 은근한 눈빛을 보내주던 행인들, 골목으로 도망쳤을 때 빠끔히 가게문 열고 들어오라던 상인들, 한국의 시위를 지지한다는 외신 한 줄……. 그 작은 하나하나가 공포에 떨며 내일은 나가지 말아야지 하던 발걸음을 다시 또 광장으로 향하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던 기억……. 이집트인들도 나와 같지 않을까? 트위터를 통해서라도 당신들의 소식을 지켜보고 지지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80년대 역사의 한가운데서 한사코 도망치고자 했던 저로서는 그때 그 광장에 내가 좀 더 많이 함께 했더라면 다르게 바꿀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채의식까지 겹쳐졌습니다. 비록 광장에서 함께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라도 응원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혁명을 트위터중계로 지켜보며 한국사와 맞물리는 기시감, 데자뷰는 참 몸서리쳐지게 힘들더군요. 인민의 피로 얻은 자유가 결국 군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상황에서는 ‘체념’이라는 단어가 언뜻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혁명의 과정이 우리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더라도 우리와는 다른 역사의 물꼬를 틀 거라고 믿습니다.
<기도를 하며 물대포를 막아선 시위대의 모습>
현재 튀니지의 쟈스민혁명과 이집트혁명이 촉매제가 되어 아랍전역에서 민중들에 의한 민중혁명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특히 리비아와 관련한 소식은 언론을 통해서 여러분도 자주 접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투쟁을 지지했던 전 세계 인민들로부터 얻었던 용기를 기억하며, 아랍이라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민중의 역사로 함께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0여개국 언어로 ‘무바라크 퇴진’을 적은 대자보. 한국어가 가장 위에 있는 것이 시사하는 바를 새겨봐야 할 것이다.>
트위터에서 이집트혁명 중계를 보다 몇몇 친구들이 시위대가 이집트국가만을 부른다며 한국의 민중가요를 불러 용기를 주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가사 번안할 분을 물색하다 이집트혁명이 끝나버려 성사되지 못했지만, 그때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한참 고민하다 결정한 노래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시대’라는 노래입니다.
‘시대’는 99년에 발표한 정윤경의 1집 첫곡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노래가 ‘평화’를 노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몇몇 가사 때문에 생긴 오해인 듯합니다. 1996년 12월 26일 10시 43분 03초, 노동관계법의 기습통과를 보며 만든 노래입니다. ‘민주정부’, ‘문민정부’라고 하는데 진정으로 그러한가? 과연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있는가? 권력과 자본의 폭력 앞에 민중들의 삶은 군사정권시대와 달라질 것이 없지 않은가? 자본주의의 모순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 삶은 그대로이지 않는가?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정윤경은 전문노련노래패 ‘들무새’의 노래강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자노래패도 자신의 노래를 갖고 공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들무새’가 부를 신곡을 만들던 시기에 노동관계법 기습통과를 보며 김영삼 정권의 본질을 꿰뚫는 노래를 반어법적으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는 1997년 노동자노래패 ‘들무새’에 의해 처음 불렸습니다. 처음 노래제목도 ‘문민시대’였으나 1999년에 정윤경 1집음반에 넣으며 ‘시대’로 바꿨습니다.
노랫말은 눈치 채셨겠지만 브레히트의 시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 첫 번째 전쟁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 이미 여러 차례 전쟁이 일어났었다. / 지난번 전쟁이 끝났을 때 / 승전국과 패전국이 있었다. / 패전국에서 하층서민들은 / 굶주렸다. 승전국에서도 역시 / 하층서민들은 굶주렸다.
70여 년 전 브레히트가 노래했던 민중의 삶이 20세기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놀랍지 않습니까?
정윤경은 이 노래를 만들며 기존의 민중가요와 다르게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4박자의 힘차고 거친 투쟁가와는 다른 질감으로 노동자 민중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던 거지요.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3박자로 다른 민중가요에 비해 리듬감이 돋보입니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들을 때의 시원시원하면서도 경쾌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악보 상으로는 4분 음표 중심으로 아주 딱딱하고 단순해 보이는데 실제 노래를 부르다보면 저절로 몸을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며 박자를 맞추게 될 겁니다.
이 노래는 단어와 단어에 초점을 맞추어 말하듯 또박또박 발음하며 노래하셔야 합니다. 잠깐 방심하고 열심히 노래하다보면 자칫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다’라는 문장을 만드실 수도 있습니다. 군홧발, 폭력, 생기발랄, 무한경쟁, 전사, 승전국, 패전국 등의 단어마다 또박또박 힘을 주어 불러야 노랫말이 가진 의미를 살릴 수 있습니다. 마치 옆 사람에게 말한다는 느낌으로 노래해보세요. 3박자 곡이므로 첫박에 강박을 넣고 단어마다 정확하게 강조하여 리듬감을 살려 부르면 노래의 맛을 잘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자 이제 노래를 들으며 함께 불러보실까요?
시대
정윤경 작사
정윤경 작곡
정윤경 노래
군화발의 시대는 끝났다한다 폭력의 시대도 끝났다한다
시대에 역행하는 투쟁의 깃발은 이젠 내리라 한다
라~라~라~라~라~
허나 어쩌랴 이토록 생기발랄하고 화려한 이 땅에서
아직 못 다한 반란이 가슴에 남아 자꾸 불거지는 것을
라~라~라~라~라~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화의 전사가 되란다
살아남으려면 너희들 스스로 무장을 갖추라 한다
라~라~라~라~라~
그 모든 전쟁에서 너희들이 만든 그 모든 전쟁에서
승전국의 병사들과 패전국의 병사들은
너희가 만든 그 더러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나
죽어야만 얻을 수 있는 영예를 얻었고
다쳐야만 얻을 수 있는 명예도 얻었지
폐품이 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그 고마운 자유도 얻었지
승전국의 병사들과 패전국의 병사들은
너희가 만든 그 더러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나
너희가 만든 그 더러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나
라~라~라~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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